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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무엇을 손에 쥐고 있는가가 아니라 누가 곁에 있는가에 달려 있음을 나는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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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9 03:59 분류없음
초강대국 미국은 남북 전쟁을 겪기 전까지 흑인 노예제도라는 낡은 구습으로 
인권을 유린하던 시절이 있엇다.

조지 워싱턴 카버는 바로 그 남북전쟁 직후에 흑인 노예의 아들로 태어났다.
태어난지 불과 몇 달 만에  어머니와 함께 노예 도둑에게 끌려가  어머니는 배에 실려간 뒤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고  어린 조지는 경마용 말과 교환되어  모세스 카버에게 팔려가는 처지가 되었다.

링컨에 의해 노예 해방이 되자  그의 주인 이었던 모세스 카버는 조지를 양자로 삼고, 학교에 까지 보내게 된다.

" 흑인은 왜 공부를 하면 안되나요?"

이런 생각을 품었던 조지에게는 그야말로 하늘의 선물이나 다름없었다.
비록 노예의 신분이었지만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기 보다는 늘 변화를 꿈꾸는 소년이었다.

조지의 학교생활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그를 돕는 손길 또한 준비되어 있었다.

Iowa 농과대학 최초의 흑인 학생과 농업박사가 된 그는 , 늘 가난과 굶주림에 허덕이는 
남부 흑인들에게 목화가 아닌  고구마와 땅콩을 재배하도록 독려해서  그들의 경제를 되살리는데 큰 몫을 해냈다.

그런데 해마다 땅콩 농사가 풍년이 되자  남아도는 땅콩 때문에 다시 경제적 어려움이 닥쳤다.

'이 땅콩으로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고민하던 조지는 땅콩 연구에 전념해  오늘날 땅콩 버터를 만들게 된다.
그 외에  땅콩을 이용한 식료품, 의약품, 화장품 등 300가지가 넘는 제품을 개발해 
쓰러져가는 경제를 다시 일으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는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과학자'중 한명이며  위대한 발명가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는 영예도 얻었다.

 "어떤 것이든 당신이 그것을 아주 많이 사랑한다면 
 그것이 당신에게 말을 걸 것이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그는  자신이 배운 것을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일생을 봉사와 나눔의 삶으로 채웠다.

posted by cloudberry